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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리 쓰는 유언장(遺言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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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죽거든,
너희들은 눈물을 훔치며
애통(哀痛)해 하지 말아라.
또한
아무도 부르지 말아라.
다만
평상시(平常時)처럼 행동(行動)하며,
내가 즐겨보던 책(冊)을 읽어서
추모(追慕)의 정(情)을
대신(代身)하여
길을 밝혀 주면 그로서 되느니라.
수의(壽衣)는
따로
무슨 필요(必要)가 있겠느냐?
보기에도 흉(凶)할 뿐 더러,
례도(禮道)에도
꼭
그렇게 하라고 정(定)해져 있는 것도 아니니,
마지막 가는 길,
그냥,
평상복(平常服)으로 옷깃을 다듬어
나무토막 보다 못한 몸이지만
보기에 민망하지 않게 편안(便安)하게 입혀 주고,
그 위에다
원무상지범대행수일체지(願無上持梵大行修一切智)
라고
써서
몸 위에 덮고 관(棺) 뚜껑을 닫고,
관(棺) 위에는
태백후인(太白後人)
위화소군(爲化少君) 잠들다.
그렇게 써서
관(棺)을 덮은 다음 화장(火葬)하여,
뼈를
곱게 갈아 공기 맑은 곳을
그 때 상황(狀況)에 맞게 선택(選擇)하여
부드러운 바람 결에 화장(火葬)한 재를 날리면,
그것으로서
보내는 례(禮)는 훌륭하게 마친 것이다.
평상시(平常時)에
오물통(汚物桶)에 빠져 헛소리를 하며,
엉뚱한 곳을 향(向)하여
헛 손짓과 헛 발질을 해 대던
사람들을 쓸데 없이 불러 아무나 오게 해서,
그들의 몸에 묻은
오물(汚物)에서 풍기는 악취(惡臭)로
초상(初喪)집을 더럽히려 하거나,
번거(飜擧)롭게 이것저것 들춰 내며
소란(騷亂)을 피우며 시끄럽게 하지 말라.
추모(追慕)하려는 정(情)이
조금이라도 간절(懇切)하거던,
내가
평소(平素)에 즐겨보던
도장진경(道藏眞經)을 읽어서,
초상집이
삼청(三淸)과 통(通)하고 있음을
증명(證明)해 주기 바란다.
세상(世上)은 덧없는 것이고,
세상(世上) 사람들의
인정(人情) 또한 허망(虛妄)한 것이어서,
무엇하나
사랑했다고 마음 조릴 일도 없나니라.
무엇이,
이승과 저승을
대신(代身)할만한 것이 있을 수 있겠느냐?
부탁(付託)하건데,
세상(世上)
사(事)와 물(物)에 대(對)하여
어떠한 것이든 절대(絶對)로
망상(妄想)을 품지 말고
실지(實地)만을 참구(參究)하기에 힘쓰고,
인정사정(人情事情)에
너무 매달려 대사(大事)를 그르치지 말아라.
틈틈히
인격도야(人格陶冶)에 힘쓸 것이며,
미신적(迷信的)인 종교(宗敎)나
허망(虛妄)된 신앙(信仰)에 매달려,
쓸데 없이
아까운 삶을 허비(虛費)하지 말아라.
삼세(三世)의 일은
옛 어른들이 남기신 경권(經卷)에,
꼼꼼히 적고 설명(說明)까지 붙여서
후대(後代)에 전(傳)해 주시고 물려 주신 것이니
미심(未審)쩍어 하지 말고,
항상(恒常)
경권(經卷)을 살피고 익혀 삼생(三生)을 밝히는
등불로 삼아주기를 간절(懇切)히 바랄 뿐이다.
다시 거듭 말하지만,
초상(初喪)을 당하면,
옷을 갈아 입힐
한 두어 사람만 있으면 될 것이나,
그것도 여의(如意)치 않다면
입고 있던 옷을 그대로 입관(入棺)하여 넣고,
초상(初喪)을 치뤄도
결례(缺禮)가 되는 것도 아니고,
또한
아무런 탈도 없을 것이다.
어찌 되었던,
아무나 불러
장례(葬禮)를 시끄럽게 하지 말아라.
일이 닥치면,
황망(慌忙)한 중에
우왕좌왕(右往左往) 할까봐
미리 몇자 적어 대비(對備)해 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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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기는
20만권(二十萬卷)의 책(冊)은,
요지금선(瑤池金仙)이
알아서
정리(整理)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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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참으로 어리석어서
선인(善人)과 악인(惡人)을
가려서 선별(選別)하지 못하고
아무하고나 덮어놓고
인연(因緣)을 잘못 맺고
잡인(雜人)들과 어울려 저지른 죄(罪)는 있지만,
남을 속이고 산 자(者)는 아닌
자(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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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정(影幀) 사진(寫眞)은,
내가 열 여덜살 때
아부지 장례식(葬禮式)을 치르고 난 후
우연히 찍은
나의 사진(寫眞)을 쓰도록 해서,
효도(孝道)는 커녕
살아계실 때
속만 썩여 드린 죄책감(罪責感)으로
평생을
아부지 생각에 사무쳐서 살았음을,
염라국(閻羅國) 저승 법정(法廷)에서
재판(裁判) 받을 적에
조금이라도
증빙(證憑)을 삼을 수 있도록 해 준다면 고맙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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