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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6년7월30일 금요일 아침7시 유언장(遺言狀)과 함께 발견된 사진 한 장. ㄱㅂㄷ구명운동(救命運動)이 실패로 돌아가자 마지막을 결심하고 준비한듯 하다. 아아, 심장이 얼어 붙는듯 머리에서 수류탄이 터진듯 하던 세월아!

작성자 Baikaltai House(ip:)

작성일 2018-06-07

조회 7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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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용

.

***


1976년(丙辰) 7월30일

금요일 아침에 발견(發見)된,


ㄱㅂㄷ

구명운동(救命運動)이

실패로 돌아가자

작성한 것으로 보이는 유언장(遺言狀)은,


기록(記錄)과 함께

도서관(圖書館)에 간직해 놓아서,


뒤에 오는 사람들이라면

누구나

살펴 볼 수 있도록 하였다.


ㄱㅂㄷ구명운동(救命運動)에

관련(關聯)하여서는,


대구직할시(大邱直轄市),


권화조(權華祖) 선생(先生)

백칠복(白七福) 선생(先生)

김숙자(金淑子) 선생(先生) 등이,


하나도 빠짐없이

상세(詳細)하게 잘 알고 있는 일이지만,


그 또한,


아무 일도 없었던 듯이

모르는 척 상관(相關)없는 척

비열(卑劣)하게 모두 잊혀지고 말았다.


그리고는

수명복자(受命福者)인 선생(先生)들도,


박나찰(朴羅刹)에게,


모두가

황송(惶悚)한듯,


고두례(叩頭禮)를 올리며

치욕적(恥辱的)으로 굴욕(屈辱)을 당하였다.


나찰귀(羅刹鬼)를 도와

수많은

악행(惡行)을 방조(傍助)하였으며,


그리고는,


비행(飛行)하는 강상박나찰(江上朴羅刹)의

소굴(巢窟)인

귀곡성(鬼哭城)에 두 발을 들여놓았다.


이상(以上)과 같은 일은,


삼관부(三官府)

규찰록(窺察錄) 귀신명부(鬼神名簿)에,


추상(秋霜)과 같이 적혀 있는

삼관(三官) 사찰기록(査察記錄)의 일부(一部)이다.


똘마니 노릇을 했던 자(者)들이

어떻게

박나찰(朴羅刹)의 손아귀를 벗어나겠는가?


사람이 한 번 숨이 떠러져 죽어버리면,


죽는 것으로

그냥

모든 것이 끝나버리는 것이라고 한다면,


하늘이

어디를 어떻게 비추고 있다고 하겠으며,


천명(天命)이

어디에 있다고 하겠으며,


천벌(天罰)이

어디를 타격(打擊)한다고 하겠는가?


또한,


삼생(三生)의 인연(因緣)이

어디에 어떤 모습으로 얽혀있다고 하겠으며,


인과응보(因果應報)가

도대체

어디에 존재(存在)한다고 하겠는가?


아아,


천명(天命)은 엄중(嚴重)한 것이다.


죽은 후(後)의 일은 어찌할 것인가?


천선(天仙)이

옥순(玉筍)을 다듬는 일을,


나찰(羅刹)이,


고혈(膏血)을

빨아

먹는

일과

혼동(混同)하지 말라.


***


***


천지간(天地間)에,


대천계(大千界)의 한 빛 모였다가

왔던 곳으로 다시 돌아가니

이렇게 왔다가 이렇게 가는 것이,


어찌

나만의 일이겠느냐?


너무 슬퍼하지 말아라.


유정무정(有情無情)의 모든 삶이

 한 순간(瞬間) 숨결에 있는 것이니,


한 순간(瞬間)속에

애증(愛憎)을 담아두면 무엇하겠느냐?


모든 분야(分野)에서

부(富)를 윤색(潤色)하는 장부(丈夫)가 되라.


스스로 속고 스스로 미혹(迷惑)되는 것임을 깨닫고

다만

자기계발(自己啓發)에 힘쓰거라.


아계사조(雅溪師祖) 자경문(自警文)은

세상(世上)을 영도(領導)하시는 유훈(遺訓)이시니,


가슴 속 깊이 새겨 후대(後代)를 빛내라.


이것으로,


삼청(三淸)과

함께

했음을 알리는 증표(證票)로 남긴다.


2010년 8월 27일 (庚寅 陰7월18일申時)


강보현당(姜普賢堂)이

지나 온 길을 돌아보고 앉아,


한가하게

시간(時間)을 정리(整理)하며 적었다.


보현당(普賢堂) 비망록(備忘錄)에서 -


***

***


대략(大略) 간추린 소사(小史).


1976년 4월 17일 밤 소위(所謂) 난동사건발생(亂動事件發生).


                         앞으로

                         나는 이 일을

                         박나찰(朴羅刹)과

                         김여귀(金女鬼)의 난동전말(亂動顚末)이라고

                         명명(命名)하여

                         기록(記錄)하고 후대(後代) 전(傳)할 것이다.

                         왜냐하면

                         그 자(者)는 숨이 떨어질 때까지

                         김 OOOO의 목을 조르고 귀굴(鬼窟)을 팠기 때문이다.

                         아무쪼록

                         후대(後代)가 교훈(敎訓)으로 삼아서 근신(勤愼)하므로

                         나찰(羅刹)이 되거나

                         허깨비라는 귀신(鬼神)이 되지 말기를 간절(懇切)히 빈다.


1976년 4월 18일 밤에 아무도 몰래 대구(大邱)로 피신(避身).


                        동대구 고속터미널 부근 성도여관에서

                        강경자 선생을 불러 사후(事後)를 논의하고

                        백칠복 선생의 요청에 의해 곽길태 선생 집으로 은신.

                        경남 마산에 있던

                        김재호를 제일 먼저 불러 사태의 경위를 설명함.


1976년 6월 20일 19일 치열(熾熱)하게 불길이 일어 전국으로 번지자

                        급거(急遽) 상경(上京)하여 대책(對策)을 숙의(熟議).


1976년 7월 21일 뇌부(雷部)의 천라지망(天羅地網)에 봉인(封印)됨.


1976년 7월 30일 금요일 아침 7시 강경자 선생

                        서대문에 있던 여관에서 병원으로 이송.

                        유언장(遺言狀) 발견(發見).


1976년 8월 10일 김재호와 결연(結緣)을 맺은 후(後)

                        일단,

                        어떠한 일이 있어도

                        김OOOO병보석(病保釋)을 추진(推進)하기로 약속하고,

                        대구(大邱) 권화조(權華祖) 선생의 중학교 교사시절 

                        국어 제자인 부로커 장두운(張斗云)의 천거(薦擧)로

                        한봉세 변호사(辯護士)

                        입갑인 변호사(辯護士)

                        전주(全州)에서

                        송도현 선생이 추천한 윤용섭 변호사(辯護士)등

                        변호사(辯護士) 셋을 동시(同時)에 선임(選任)하고

                        2차(二次) 구명운동(救命運動에 돌입(突入).

                        병보석(病保釋)이 될 때까지 들어 간 돈이

                        당시 돈으로 중소도시에서 집 한채에 100만원 정도할 때

                        구명운동(救命運動)에 총액 3억 7천만원이 사용(使用)됨.


이 일은 대구(大邱),


권화조(權華祖) 선생,

백칠복(白七福) 선생,

김숙자(金淑子) 선생 등이

생생하고도 뚜렷하게 기억하고 있을 것이다.


김O O O O이

병보석(病保釋)으로 석방(釋放)이 되자,


박나찰(朴羅刹)은

나찰굴(羅刹窟)을 설치(設置)하고

나찰귀사(羅刹鬼事)를 전횡(專橫)하기 위해서,


어떠한 경우(境遇)라도,


김재호와 강경자가

김O O O O의 곁에

가까이 못오게 하거나 나타나지 못하게 하려고,


박나찰(朴羅刹)과

나찰귀(羅刹鬼)의 졸개들이,


도리혀,


김재호와 강경자에게

휘발유를 뿌리고 불을 지름.


이상과 같은 일은

상세(詳細)하게 기록(記錄)되어,


미수(未遂)에 그친

강경자선생 유언장(遺言狀)과 함께

도서관(圖書館)에 보관(保管)되어 있다.


이러한 일을

세간(世間)에서 무엇이라고  말하던가?


세간(世間)에서는

이러한 일에 대하여  말할 때,


물에 빠진 사람 건져서

살려주니까

내 보따리 내놓아라 한다고 말하며,


이러한 행태(行態)를,


은혜(恩惠)를

원수(怨讐)로 갚는다라고 말하는 것이다.


***





첨부파일 Scan_20180626_164620.jpg , IMG_0367.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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