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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Baikaltai House(ip:)

작성일 2018-04-11 08:44: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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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용

 

***


칠진(七眞) 이후(以後)


도교(道敎)와 불교(佛敎)의 대립(對立)에서 파생(派生)된


민간종교(民間宗敎)로 흘러가게 된


천명별선(天命別線)을 추적(追跡)함.


*


도외전법(道外傳法)에


관(關)한


물음에 대(對)한 답변(答辯).


***



징기스칸(1162~1237)의 절대적(絶對的)인 지지(支持)를 받아


천하(天下) 도관(道觀)의 선봉(先鋒)에 섯던


구장춘(丘長春:1148~1227)은


전진도(全眞道)의 반석(盤石)을 확실(確實)하게 다졌으며,


칠진수도사전(七眞修道史傳)이나


백운관(白雲觀)에 얽힌 인연(因緣)은


아름다운 보석과 같이 얽혀 영롱(玲瓏)하지만,



사실(事實)은 한편으로


도저히 풀릴 수 없는


불도(佛道)의 극랄(極辣)한 대립(代立)을 일으켰다.



이런 와중(渦中)에


천명금선(天命金線)은,


전쟁(戰爭)터를 떠나,


라조(羅祖)와


오진자(悟眞子) 진인(眞人)에 의해,


수많은 삼청(三淸)의 자료(資料)와 함께


민가(民家)에 스며들어


후대(後代)에 전래(傳來)되게 된 것이다.

 


이지상(李志常? ~ 1256)은,


원(元)나라 사람으로


구장춘(丘長春:1148~1227)의 제자(弟子)였는데,



구장춘(丘長春) 조사(祖師)를 수행(隨行)하여 서유(西遊)하면서


설산(雪山)으로 가


징기스칸(1162~1237)을 만나고 온 것을 기록(記錄)하여


장춘진인서유기(長春眞人西遊記)를 지었는데,



장춘진인서유기(長春眞人西遊記)는


당시(當時)의지리(地理)를 연구(硏究)하는데 중요한 자료(資料)다.



이지상(李志常? ~ 1256)은


이지평(伊志平)의 후임(後任) 전진교조(全眞敎祖)로


6년 동안 전진교(全眞敎)를 이끌면서


전진교(全眞敎)를 널리 퍼트렸는데,


이 때,


전진교(全眞敎)가 교세(敎勢)를 확장(擴張)하면서


도교(道敎)와 불교(佛敎)가


격렬(激烈)하게 대립(對立)을 하게 되었다.



헌종(憲宗) 5년(1255년)


이지상(李志常)은


전진교도(全眞敎徒)를 이끌고


사찰(寺刹)을 점거(占據)하고 불상(佛像)을 파괴(破壞)하는 동시(同時)에


유교(儒敎)의


건축물(建築物)인 공묘(孔廟)도 파괴(破壞)하기에 까지 이르렀다.


그런 한편으로 그 유명(有名)한


태상혼원상덕황제명위화호성불경(太上混元上德皇帝明威化胡成佛經)과


노자팔십일화도(老子八十一化圖)를 다시 간행(刊行)하였다.


이러할 즈음,


소림사(小林寺)에 주석(駐錫)하고 있던 고승(高僧) 복유(福裕)가


헌종(憲宗 : 5년-1255년)에게 상주(上奏)하여


이지상(李志常? ~ 1256) 등 전진교도(全眞敎徒)들의 요망(妖妄)함을 지적(指摘)하자,


헌종(憲宗)은


이지상(李志常)과 복유(福裕)가 서로 대면(對面)하여 논쟁(論爭)할 것을 명령(命令)했는데


이지상(李志常)이 복유(福裕)를 당해내지 못하였다.


다음 해에 다시


이지상(李志常)과 복유(福裕)가 만나 논쟁(論爭)했지만


이지상(李志常)이 복유(福裕)에게 패(敗)했고


결국(結局)은 논쟁(論爭)을 끝내지 못하고


그 해에 이지상(李志常)은 세상을 떠났다.


이지상(李志常)이 복유(福裕)에게 패(敗)하고


그로부터 10여년 후(後)


지원(至元) 18년(1281年)


도덕경(道德經)을 제외(除外)한 모든 도장(道藏)과 인판(印版)들이


모두 불속에 들어가 불태워져 화염(火焰)과 함께 사라지므로


도교(道敎)는 극심(極甚)한 타격(打擊)을 입게 되었다.


이 때


도관외(道觀外) 재야(在野)에서 수행(修行)에 진력(盡力)하던


오부륙책(五部六冊)의 주인공(主人公)인 라조(羅祖)와


오진자(悟眞子) 진인(眞人)이 소장(所藏)하고 저작(著作)한


달마보전(達摩寶典)등 극소수(極小數)의 희귀(稀貴) 자료(資料)만 건져져


천명금선(天命金線)과 함께


도외(道外) 민간(民間)을 통(通)하여 후대(後代)에 전속(轉屬)되었다.


한편,


소림사(小林寺)에 주석(駐錫)하고 있던 고승(高僧) 복유(福裕:1203~1275)는


원(元)나라 때 조동종(曹洞宗)의 승려(僧侶)로,


5살 때 말을 할 줄 알아 하루에 천마디를 외웠다 하며


9살 때 학교(學校)에 들어가 공부(工夫)하면서 한꺼번에 열 줄을 읽어 마을에서


성소아(聖小兒)로 부를 정도로 신동(神童)이였다.


12살 때 몽고(蒙古)의 남침(南侵)으로 고향을 잃고 의지할 곳 없이 떠돌며 방황하다가


한 늙은 비구(比丘)의 도움을 받아 불문(佛門)에 들어가는 기연(機緣)을 얻었다.


복유(福裕)는,


선암(仙巖) 휴림고불(休林古佛)로 부터 구족계(具足戒)를 받고 7년을 수학(修學)했으며


연경(燕京) 보은사(報恩寺) 만송행수(萬松行秀)의 인가(認可)를 받고 10년 동안 수종(隨從)하였다.


서경(西京) 소림사(小林寺)에서 법(法)을 펴다가 세조(世祖)인 황태자(皇太子)의 명령(命令)을 받들어


대자계회(大資戒會)를 운영(運營)하였다.


정종(定宗) 3년(1248년)에는 황명(皇命)으로 화림(和林) 흥국사(興國寺) 주지(住持)를 맡는 등


황실(皇室)의 신임(信任)이 대단하였다.


그 당시


징기스칸의 절대적(絶對的)인 신임(信任)속에 있던


구장춘(丘長春) 조사(祖師)의 권능(權能)에 의(依)해


전진교(全眞敎)가


화북(華北 : 民間宗敎가 가장 活潑했던 곳이다) 일대(一帶)에


크게 퍼져 세력(勢力)이 대단했는데,


이에 따라,


불교(佛敎) 교단(敎團)은 상대적相對的적)으로 위축(萎縮)되고


자못 핍박(逼迫)을 받으며


불교(佛敎)와 도교(道敎)의 대립(對立)은 날이 갈수록 첨예(尖銳)해져 갔다.


헌종(憲宗) 원년(元年:1251)에


전진교(全眞敎)의 교주(敎主) 이지상(李志常)이


그 유명(有名)한


노자화호경(老子化胡經)을 간행(刊行)하여 세상에 퍼트렸다.


헌종(憲宗) 5년(1255년)과 7년(1257년) 사이 2년 동안


여러차례 복유(福裕)와 이지상(李志常)이 변론(辯論)을 펼쳤는데,


전진교(全眞敎) 이지상(李志常)은


번번(飜飜)히 복유(福裕)에게 패(敗)했다.


이에 따라


도장(道藏) 가운데 위경(僞經)으로 내몰린 수많은 진경(眞經)들이


모두


불 속으로 들어가 재로 화(化)했는데,


재야(在野)에 있던


라조(羅祖)가 소지(所持)하고 있던 자료(資料)와


오진자(悟眞子)의 강의(講義) 저작(著作)만이 생명(生命)을 유지(維持)하고


마단양(馬丹陽)의 천명권(天命權)과 함께 건져져


속가(俗家)로 흘러가 후대(後代)의 지표(指標)로 남게 된 것이다.


지원(至元) 18년(1281年) 도덕경(道德經)을 제외(除外)한 도장(道藏)과 인판(印版)들이


모두 불태워질 때,


전진교(全眞敎) 도관(道觀) 237개소(二百三十七個所)도


불교(佛敎) 교단(敎團)에 빼앗기는 수모(受侮)를 당하며


그야말로,


흡사(恰似)


여객기(旅客機)가 공중폭발(空中爆發)한 것과 같은 상황(狀況)이 되었다.



그 당시(當時)의


이러한 처참(悽慘)한 상황(狀況)은


말로만


글로만 전(傳)해지고


후대(後代) 사람들은 그냥 담담(淡淡)히 돌아다 볼 수 있는


역사(歷史)가 되었지만


전진교단(全眞敎團)은 공중폭발(空中爆發)을 당하고


무수(無數)한 보석은 천하(天下)에 대책(對策)없이 흩어지고


전진교도(全眞敎徒)들은


방향타(方向舵)를 잃어버린  지남침(指南針)이 되였다.


그리고 천명금선(天命金線)은


물길처럼


지하(地下)로 쏙 빨려 스며들어가 세상(世上)에서 모습을 감추게 되었고


여러 형태(形態)의


민간종교(民間宗敎)로 모습을 드러내게 된 단초(端初)가 된 것이다.


한편,


복유(福裕)는


후(後)에 고향(故鄕)으로 돌아가


황명(皇命)으로 보은사(報恩寺)를 건립(建立)하고


지원(至元) 12년 세수(世壽) 73세에 입적(入寂)하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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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aikalta House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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